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오른손의 괴물과 같이 살기.' [기생수 1~8권: 이와키 히토시]


기생수.1(애장판)
카테고리 만화 > SF/판타지
지은이 Hitoshi Iwaaki (학산문화사, 2010년)
상세보기


신이치...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으로 판명된다.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두종류야... 훨씬 간소하지.- <기생수 1>

 막판에서는 신이치가 이 말을 다시 뒤집는 행동을 하면서, 인간답게 돌아간다. 지금까지 봤던 만화책 중에서 바람의 검심 다음으로 훌륭한 엔딩이었다. (그 반전 외에 또 다른 반전도 있지만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오른쪽이가 신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 하나만 밝혀두겠다. 역시 공부하는 천재는 당해낼 수가 없음.) 사실 오른쪽이처럼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생각하는 것조차 힘든데, 세상을 지킬 겨를이 있는가? 바람의 검심 1권에서 켄신이 말한 대로, 소중한 사람 하나 지키기에도 벅찰 노릇인데. 그런 점에서 나는 신이치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본다. 그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용사가 아니라, 그저 가족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오른손의 괴물과 계약을 맺고 싸우는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사실 전투장면도 SF장르답고 꽤나 임펙트했지만 오른쪽이와 신이치 사이의 미묘한 우정관계와 대화에 관심을 좀 더 집중했다. 작가는 대체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이 글을 썼을까? 오른손에 또 다른 생명체를 그리고, 자신에게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보며 오래 곱씹지 않았을까? 더불어 인간이 환경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매우 독특한 견해을 갖추고 있다. 최근 환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유심히 보아야 할 책이다. 기생수가 인간과 섞여서 지내는 장면이 약간 껄끄럽고 찝찝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모든 생물들이 같이 공생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정치를 포함하여 지구를 지킬 줄 모르는 인간사회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결국 긍정적으로 전개되나, 싶다가도 날카로운 풍자로 독자들을 콕콕 찌른다. 인간의 몸으로 낳은 아기를 지키다가 죽은 기생수, 기생수보다 더 끔찍하게 인간들을 죽이는 인간. 인간답다는 건 무슨 뜻이고 괴물답다는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답다는 개념은 존재한다. 굳이 신이치의 여자친구가 제시한 개념으로 축소시킬 수는 없는 것 같지만. 인간같은 기생수가 있고 기생수같은 인간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듯하다.

(SF 캐릭터들을 수집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질문. 당신의 팔에 기생할 생물을 고른다면, SF 괴물을 고르겠습니까, 아니면 초미소녀를 고르겠습니까?!


리뷰어 미나비리스(
김정원)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