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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디든지 존재한다."
감옥이 속삭였다.
"어디든지." - p. 258
일단 세계관과 인물상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일단 이름 자체가 흥미있었다. 이 책 제목의 의의에 대해서 남자친구와 토의했었는데, 본인은 Inca/r/ceron으로 나누어서 발음을 한다고 보았으나 남자친구의 이론이 훨씬 더 흥미있었다. 첫부분 '들어간다' 혹은 '내부'라는 뜻의 in, 그리고 마지막 부분 '작동한다'라는 뜻의 on을 빼면 carcer이 남는데 그걸 검색하면 뭔가 의미있는 단어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말이 되는 듯해서 일단 검색을 해보니 이런 그림과 영어 설명이 나왔다. 아무리 감이라지만 영어영문학과인 여친보다 더 영단어 내부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니 우리 남친은 천재인가보다... (은근슬쩍 염장지르기!)
Carcer는 로마에 있는 성당 중간에 겹쳐진 또 다른 건물 구조라 보면 된다.
Mamertime Prison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이 안에다가 이국의 왕을 자연사할 때까지 가두었다고 한다.
(생긴 것도 으스스하게 생겼군;;;)
이 소설 안에 존재하는 복선 중에 하나는 제목 하나로 추측해볼 수 있는 셈이다.
뭐 여기에서 나오는 인카세론은 다시 말하자면 실험체 생물이다. 이 안에다가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가둔 다음, 사피엔트라는 마법사 비슷한 현자들을 같이 넣고 그들이 이상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살아가는 구조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을리 없다. 첫번째, 나중엔 클로디아조차 간과한 사실이지만 사피엔트도 아무튼 인간이기 때문에 늙어가고 허약해지며, 결국엔 죽어간다. 두번째, 뭐 선악론은 둘째치고 악한 인간들끼리 모인 세상이 어차피 잘 돌아갈리 없다. 선한 인간들끼리 모인다고 해도 저희들끼리 지배체계가 만들어질 판에 죄수들끼리 모인 세계가 이상적이라 상상했는지. 세번째, 왜 그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인카세론을 인격체로 만든 것 자체가 실수이다. 이 감옥생명체는 인간들의 잔혹함에 어느 정도 물린 상태인 듯하다. 오죽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할까. 따지고보면 그는 철저히 법칙에 맞게 행동한다. 인간들의 혐오스런 싸움을 저지하기 위해 차라리 인간들을 없애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죽은 시체는 자신의 몸 안에서 살아가게 하고, 다른 시체들과 융합시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들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며, 인간들을 혐오한다. 인간들을 불신하고, 나 자신을 가장 불신하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는 이야기가 잘 맞는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인간들은 인간의 관점으로서 인카세론을 실패작이라고, 지옥이라고 평가한다.
인카세론 안에는 핀이 있고, 인카세론 밖에는 클로디아가 있다. 인카세론에 대한 설명은 다 했으니 굳이 핀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겠고, 밖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하겠다. 이 세계는 아마도 우리의 미래 시대인 듯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왜인지 모르지만 중세시대로 되돌아간 컨셉을 잡았다. 다시 말해 홀로그램으로 중세를 이미지화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약들을 만들어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는 진보를 만들지 않게 제약하려는 듯하다. 모순적인 듯하나 듣기엔 나름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도 문제는 있다. 첫번째, 중세시대의 모습을 너무 닮으려고 노력한 나머지 중세 시대의 문제들까지 같이 가져와버렸다. 클로디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왕이 되기 위해 숨막히는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고, 망나니 캐스퍼가 여왕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왕위에 오르는 일이 발생한다. 두번째, 아무리 홀로그램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더라도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해 불만인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여왕을 암살하려는 공작이 비밀리에 실행되고 있고, 그것도 역사가 꽤 긴 듯하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클로디아였다. 그녀는 부귀한 자신의 집안에 대해선 반발하지 않으며, 여왕이 되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단지 캐스퍼가 왕이 되면 불행해질 자신의 처지, 그리고 혼란스러워질 왕가와 국가를 걱정한다. 그녀는 사고사로 처리된 자일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그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그녀의 터프한 성격 때문에 일이 빨리 진행되었지, 이런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핀의 구출은 상당히 시간을 끌었으리라 생각한다. 상당히 충격적인 반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처를 돌아볼 여유조차 주지 않고 앞으로 자신을 몰아친다. 저런 여자가 현실에 있다면 벌써 국가 하나는 꿰어찼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녀의 등쌀에 휘둘릴 자일스가 더 걱정된다고 해야 하나(...) 결국 그녀는 핀을 구출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과제가 있다. 먼 듯하면서도 사실은 매우 가까이에 있는 인카세론을 구해내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구해내기 위해, 그들은 제 3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현재진행형 결말이다.
본인이 지금 읽고 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1월호'에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치란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행사가 아닐세.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라네. 그래야 '더 나쁜 놈들'이 점차 도태돼, 종국엔 '덜 나쁜 놈'이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이 아닌가."
결국 평강공주가 바보온달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듯, 클로디아도 핀에게 그렇게 대해야 하리라.
그가 얼마나 인카세론의 험한 분위기에 찌들어있던 간에.
그래서 사실 이 책은 자신의 남편감이자 이 나라의 왕으로서 '덜 나쁜 놈'을 선택하려는 '클로디아의 모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S 본인이 이 책을 보면서 계속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어서 뽑아봤다. 이른바 가상캐스팅?
만화캐릭터로만 뽑아서 <인카세론 만화영화판>을 제작한다는 설정 하에 가능하겠지만 ㅋㅋ
왼쪽은 클로디아 역으로 선정된 <하트나라의 앨리스>의 하트여왕.
오른쪽은 핀 역으로 선정된 <디스가이아>의 라하르.
어딜 보나 클로디아는 여왕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해야 하나... 말 그대로 포스가 풍긴다. 구불구불한 머리에 냉철한 시선, 정말 하트여왕이 맡기에 적당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핀 역은 사실 좀 갈등을 많이 했다. 원래 라하르는 아무래도 고자세에 건방진 캐릭터라서. 하지만 왕족이라는 설정이라던가, 시니컬한 자기 의형제마저도 주춤하게 만드는 타고난 언변이라던가, 특히 깡마른 몸이라는 설정을 보면 라하르가 가장 적절한 듯하다.
이렇게 여러가지 상상을 해보다가 리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뭐 그런거죠. 근데 솔직히 맨 처음에 읽었던 <굿메이어>가 훨씬 재미있었던 듯. 여러모로 <인카세론>은 세계관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이 없고,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역시 판타지는 좀 길어야 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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