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Ⅱ/기타

[조선일보]성장을 지속한 기업에는 독특한 성공비결이 있다

50년 전 있었던 美 500대 기업 중 현재까지 겨우 80개만 살아남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룬 기업의 공통점 
① 먼저 핵심사업에 집중하여 성공 
② 핵심사업을 인접 영역으로 확대 
③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신에 성공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메시지로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다이아몬드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드 비어스 (De Beers)’. 19세기 말 한 탐험가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20세기 들어 전세계 다이아몬드 산업의 75%를 장악하며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끝없이 지속될 것 같던 이 회사도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마이너스 성장, 수익률 제로, 시장점유율 40%대 하락 등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때까지 드 비어스의 전략은 한마디로 ‘공급을 통제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성장률이 급락하자 경영진은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 동안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고객 자산’에서 돌파구를 찾기로 결정했다. 즉, 광산과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는 유형 자산에서, 고객과의 돈독한 관계와 드 비어스 브랜드로 전략적 초점을 옮겨 갔다. 이에 따라 다이아몬드 원석 재고의 80%를 팔아 치우고,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 유통, 보석 디자인, 고객 세분화에 나섰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와 같은 엄브렐러 마케팅(umbrella marketing·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하위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마케팅) 콘셉트까지 도입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괄목할 만했다. 다이아몬드 사업의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연간 5%대로 올라섰다. 사업 가치는 1999년 10억 달러에서 불과 2년 만에 93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업 성장에 관한 냉혹한 현실

‘수익성 있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은 모든 기업의 기본 과제이다. 시장이 성장하는 한,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이를 달성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베인이 전세계 8400여개 주요 기업들을 15년 이상 분석한 결과, 산업 평균만큼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10년 이상 매년 지속적으로 낸 기업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았다. 30년 전 미국의 500대 기업 중 현재 남아 있는 기업은 140개에 불과하고, 50년 전과 비교하면 80여 개밖에 안 된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승자와 패자가 단기간에 확연히 갈리게 된 경우도 많다. 나이키와 리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운동화 시장의 코카콜라와 펩시’로 불리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두 회사는, 2000년대 초반 나이키의 완승으로 끝났다. 시장 가치는 8배 이상 벌어졌고, 결국 리복은 최근 아디다스에 인수됐다. 

경영자들이 성장을 제 1 과제로 삼고 노력하는 반면 대부분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업들이 추진하는 성장 전략이 주주 가치 극대화나 지속성 측면에서 거리가 먼 시도였거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 범하는 성장 전략상의 오류들

일단 기업의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하면 경영자들은 즉시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기업이 한번 부진의 늪에 빠진 경우 다시 성장세를 회복한 사례는 10%도 안된다. 이를 경험적으로 잘 아는 경영자들은 많은 경우 성급하고 무리한 대안을 추구한다.

가장 많이 시도하는 대안은 대규모 인수·합병 등을 통한 빅뱅 식의 변혁이나, 이른바 뜨는 산업(hot industry)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를 통해 매출 성장, 이익 창출, 주가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규모 인수·합병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던 15개의 빅뱅 사례에서, 해당 기간 동안 시장 평균을 웃도는 주가 성장률을 보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11개 기업은 주가가 떨어졌고 그 중 7개 기업은 반 토막이 났다. 이는 같은 기간 나머지 전체 기업들의 평균 성과 및 주가실적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 방에 부진을 털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다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기존 핵심 사업의 인접분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평균 성공률이 25% 미만이다. 또한 핵심 사업 인접도가 떨어질수록 대부분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핵심 사업과 거리가 먼, 뜨는 산업으로 비관련 다각화에 나설 경우 성공 확률은 거의 도박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영원한 성장 공식은 있는가 

베인이 수익성 있는 성장을 달성한 성공 기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이 집중(focus), 확장(expand), 재정의(redefine)의 성장 사이클을 따라 발전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지속 성장의 제1 필수 조건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진 핵심 사업을 가지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10%도 안 되는 성공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성공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이후 확장 단계에서, 성공 기업들은 강력한 핵심 사업을 바탕으로 인접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지역, 새로운 고객군, 신규 유통 채널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핵심 사업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성공 공식을 만들고 이를 철저히 반복해 나가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나이키가 신발, 의류, 공 등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농구, 테니스, 축구, 골프 등에 되풀이해 적용하여 성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한편, 최근의 상황을 보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상적인 상황이 되면서 회사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다. 즉, 기존 핵심 사업이 산업 환경 변화로 인해 근본적인 성장 한계에 부딪힌 기업들은 기존 핵심 사업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대단히 큰 이슈로 등장했다. 베인의 분석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면 기업의 30%만이 현재 핵심 사업을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40%의 기업은 망하거나 합병을 당하게 되며, 나머지 30%의 기업들은 핵심 사업 자체를 재정의해야 할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성공적으로 재도약한 기업 사례를 살펴보면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의 주 성공 요인은 외부적인 변화를 도입하기보다는 의외로 그 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내부의 숨은 자산(hidden assets)을 발굴해 최대한 활용한 결과라는 점이다. 숨은 자산이란 그 동안 기업 내부에서 저평가되거나 활용하지 않던 비즈니스 플랫폼, 고객 자산, 기업 역량 등이다. 즉 과거에는 중요성이 덜했던 소규모 비(非)핵심사업이나 ‘고아 상품’(orphan products·비인기 상품), 핵심 사업에 대한 지원 기능, 이전에는 모르고 있던 세부 고객군이나 활용되지 않고 있던 고객 데이터 등이 그것이다. 

스파이더맨, 헐크 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대표 만화캐릭터 업체인 마블 엔터테인먼트 (Marvel Entertainment)의 경우는 숨겨진 자산을 통해 재탄생한 대표 사례다. 1996년 마블사(社)는 파산 상태였다.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회사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경영진은 사업을 재기시키는 데 필요한 자산은 기존의 만화책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그 독자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5000개가 넘는 유명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했다. 마블사는 영화 제작사와 손을 잡고 회사의 유명 캐릭터를 영화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전략은 적중했다. 스파이더맨을 시작으로 인크레더블, 헐크 등이 대히트를 쳤다. 2005년의 경우 4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과 이익의 상당부분이 영화와 캐릭터 상품 관련 라이선스에서 나왔다. 



■더욱 커져가는 경영자의 역할

지속적인 성장에 성공한 기업들에게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공통 요소가 있다. 중요한 시점에 경영진의 정확한 판단력과 의사결정이 빛났다는 점이다. 최고 경영진이 내려야 되는 가장 어려운 결정들은 회사의 기존 핵심 사업에 계속 집중해야 할지, 새로운 금맥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아니면 아예 사업 자체를 재정의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사업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하는 기업의 성공률은 그러나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최고 경영자에게는 매우 커다란 부담이며, 동시에 기업들에게는 향후 ‘경영진 리스크’가 보다 증가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례연구를 보면 많은 경우 숨은 자산의 존재 여부 못지않게 각 경영자 및 조직이 자신들의 숨은 자산을 잘 이해하고 적기에 발굴해 낸 것이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기업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도 ‘차세대 성장 엔진의 확보’이다. 이로 인해 인수·합병을 포함한 공격적인 사업확장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성장 전략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 따른 접근보다는 딜(deal)의 결과가 더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볼 때 한국의 지속적인 성장기업 비율은 해외보다 낮고, 경쟁력 있는 핵심사업을 보유한 기업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성장의 성공 요소와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국내 기업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