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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독서노트

메가쇼킹-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

고민하는 힘과 고민하지 않는 힘 그 두가지의 힘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때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판을 벌리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어째 됐든 판만 벌여 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또 매번 아무런 고민 없이 무턱대고 판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정에 앞서 심사숙고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p85


만화가 메가쇼킹이 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은 도시 삶에 지친 작가가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자 하는 결심에서 부터 1년 간의 운영까지 느낀 좌충우돌 정착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최근 독서모임에 자주 나오는 한 친구가 찾아와서 독서법을 물었다. 곰곰히 생각하다 책선정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관계된 사람의 추천도서 읽기이다. 누군가에게 책 한권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쉽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책은 꽤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추천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짭짤한 부수입도 따라온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잘 모를 경우 추천해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스스로는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일단 나는 만화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다. 고로 메가쇼킹이 누군지 모른다. 무엇보다 가장 싫었던 부분은 책의 문체였다. 만화작가 특유의 재치와 언어의 유희를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이책이 가진 큰 장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웃음짓게 만드는 소소한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말장난 같은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글을 구어 또는 블로그 글에 적합하다는 선입견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이미 머릿속에는 나의 벗들과 함께 쫄깃센타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광경들이 아이맥스 3D 입체영상으로 펼쳐졌다.', '밤새 신나게 술판을 벌이며 이야기꽃으로 화훼단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등등


그래서 책의 절반을 읽을 때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특유의 '막내 근성'으로 속으로 계속 툴툴 거리면서 읽었다.(이렇게 속으로 마음껏 툴툴 거리고 투정도 부렸다가 생트집도 잡았다가 감탄고 했다가 하는게 책읽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때 다시 추천도서의 위력이 발휘되는데, 바로 '추천자에 대한 믿음'이다. 추천자에 대한 신뢰가 내가 가진 틀과 불편함을 억누르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추천받기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 꽤 멋지지 않은가? 내게 그 속담은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쫄패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쫄깃쎈타. 그래서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질 것 같은 느낌에 늘 염통이 두근거린다. -p235


절반을 억지로 읽으니 작가의 제주 생활에 동화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 작가의 저질 웃음(?)에 함께 웃고 고민할 때는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꿈을 쫓는 일을 하고 있다보니 어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고작 몇년의 경험으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본문의 즐거운 이야기들보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메가쇼킹을 비롯한 쫄패(게스트 운영진?)들이 그동안 겪었던 갈등이나 하고 있는 갈등을 기록한 인터뷰내용이 더 와닿기도 했다.


지금의 2030세대는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거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욕망과 그게 사치는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가 말이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모두 동지이고 또한 모두가 미완성이다. 동지로서 쫄패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메가쇼킹의 작가로서의 모습이 게스트하우스의 꿈과 어우러진 부분이 있어 옮기고 싶다.

쫄깃쎈타 공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제주도 정착에 성공하면서 결국은 내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얻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무엇을 놓았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러고 보면 쫄깃센타를 지으면서 난 만화를 그리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쫄깃센타가 마감해야 할 원고라면 나를 비롯한 쫄패들 한 명 한 명은 내가 그리는 만화를 멋지게 이끌어 나가는 캐릭터 들이었다. 


일단 '쫄깃쎈타'라는 원고가 헤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만화를 그리는 과정에 만족해야 결국 좋은 원고를 얻을 수 있는 법! 어쨌든 '쫄깃쎈타'라는 원고는 완성되었고 이젠 독자들의 평가를 받는 일만 남았다.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