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특별한 청춘을, 선한영향력의 힘을 믿는 청춘을 만나고자 했다.-편집자주
당신은 '최장순'이라는 사람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브랜드를 하나라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 최장순(32세)씨는 한국최초의 브랜드컨설팅 회사, Brand&Company에서 Creative Director를 맡고 있다. 최근 작품으로는 한국야구르트의 R&B라는 요구르트로 여배우 한예슬이 출연하는 TV광고에 등장한다. 그 외에도 최씨의 손을 거친 브랜드는 수없이 많다. 수십개에 이르는 포트폴리오 중, 8년째 TV를 안보는 나도 아는 게 열개를 넘었으니,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게 아닌가 싶다.
"단지 토익점수를 위해 도서관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토익시험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어는 최소한의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잖아요? " 최씨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입사서류를 전부 영어로 써서 제출했다. 영어 잘하니까 하는 소리가 아닐까 또는 소위 '엄친아'가 아닐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씨는 순수 국내파에 지금도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일한 만큼 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게 토익점수 없이 당당히 국내 최고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 입사, 지금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국내 최고의 브랜딩 전문가 중 한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도 '반골기질'이 있다고 순순히 말하는 사람. 공익브랜드 나눔 커뮤니티 '매아리'의 공동설립자 최장순씨. 그가 궁금했다.
"100여명의 브랜딩 관련 프로보노가 활동하는 비영리 커뮤니티, 매아리"
매아리는 '매일매일 부르는 아름다운 이름'의 줄임말이다. 활동을 시작한 지는 2년 정도됐고, 100여명의 프로보노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 개 사회복지단체의 브랜딩을 도왔다. 공동 설립자인 최장순씨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이 있는 분당으로 향했다. 그는 일이 많아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반기는 그의 목소리엔 피곤함 보다는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최장순씨는 캐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집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밖에 못 들어가고,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저런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인터뷰에 응하는 최씨의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열정에 넘쳤다. 이렇게 3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매아리 네이버 카페
첫번째 질문은'회사 업무 만으로도 이렇게 바쁜 사람이 무슨 시간이 있길래, 어떤 동기로 비영리 단체를 조직해서 이끌고 있을까'라는 당연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최씨는 겸손하게 말했다."어느 날이었어요. 팀원이 다같이 봉사활동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죠. 몇번 같이 가기도 했고요. 하지만 주말 잔업이 많은 분야에 종사하다보니 정기적으로 참여하기가 힘들었어요. 불규칙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많이 고민 했죠. 그러던 중 지금 매아리를 함께 이끌고 있는 브랜드풀의'진근용'씨를 만나게 됐죠. '그래, 우리 같이 한번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거죠."
최씨는 자신이 이 일을 하게된 공을 모두 자신의 팀원과 공동설립자인 진근용씨에게 돌렸다. 하지만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자고, 시간이 아까워 퇴근도 일주일에 한두번 한다는 사람이, 그냥 우연히 그것도 2년씩이나 한가지 일에 열정을 바칠 수 있을까? 보통사람이라면 주말에 잠자기도 바쁠텐데 말이다. 그의 겸손함은 익히 들어온 지라, 그의 진짜 생각을 듣고 싶어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때론 거침없이, 때론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대학 생활 중에 있었던 일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가난하고 힘든 것은 네가 부지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접근 방식 옳지 않아"
최씨는 대학시절 '구조주의'에 심취하여 다양한 고전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비전을 많은 대학생 조직이 내부적으로 부조리와 불합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고민을 해왔다고 한다.
"저는 구조주의자입니다. 학부시절부터 제 관심사는 개인 개인이 저마다 불공평하게 주어지는 조건 하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마치 민주주의가 굉장히 많이 진보하여, 개인이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주입하죠.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성공을 일반화하고, 달동네 소녀 가장에게까지 '네가 지금 힘든 건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네가 못 사는 건 네가 덜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사실들의 구속력을 무시하는 태도이고, 우리를 태생적으로 한계 짓는 구조의 힘을 모른 체 하는 기만이지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고민의 기색이 스쳤다. 이내 다시 힘을 얻은 듯 말을 이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저 같은 미미한 개인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경향성을 만들어간다면, 그래서 그 경향성이 흐름을 만들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사실들을 바꿔갈 수 있는 의미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간다면, 구조는 인간답게 변혁 혹은 진화해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가 잘 할수 있는 것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매아리를 하게 이유로 대화는 흘러갔다. 표면적 이유가 아닌 그의 내부에서 끓어오른 진짜 이유 말이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나누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매아리라는 조직이지요. 매아리의 초기 관심은 후원금 양극화 현상이 발생되고 있는 복지 비즈니스였습니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 보다도 더 잘 나가는 복지단체들이 있는가 하면, 후원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잡지 못해 무료급식을 중단한 단체도 상당히 많은 게 현 복지 시장의 현실입니다. 복지를 시장이라고 표현해서 뉘앙스가 좋지는 않지만, 제 기본적인 생각은 복지 사업은 분배의 미덕을 잘 살려야 하는 후원 비즈니스이고, 후원의 형식을 보다 세련되게 마케팅하여 후원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마음 비즈니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지사업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마음의 시장’에서 후원을 해야만 하겠다는 명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 명분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네임이나 슬로건 같은 것입니다."
브랜드에 대해 설명하는 매아리 설립자 최장순씨
"단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잘 구축해놓는다면, 일반 시민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어"최씨는 그런 단체들을 골라 후원비즈니스 생태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브랜딩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잘 구축해놓다면, 일반시민들의 마음을 더 잘 움직일수 있을 거라는 최씨의 신념어린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의 말처럼 바람직한 브랜딩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수만 있다면 일반 대중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서로 나누는 멘털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멘탈이 일종의 '무브먼트'를 만들어간다며, 구조가 조금씩 진화해갈 수도 있겠다, 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일이 바로 매아리의 브랜드 컨설팅입니다."
매아리에서 진행했던 '희년의 집'
그는 2년여간 매아리 활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도 함께 밝혔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는 매아리의 미래, 그리고 우리의 미래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브랜딩이 필요한 단체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브랜딩이 필요한 단체는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때론 부유한 복지단체가 비용절감의 수단으로 저희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아주 영세한 단체는 브랜딩에 대해서 아직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공익적인 '문화캠페인'을 통해 세상에 변화 주고파"
최씨는 요즘 브랜딩이 가진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좀 더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문화캠페인'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나의 생각과도 일치했다. 준비 중인 책나눔캠페인에 대해 귀뜸하자 반색하며 기뻐했다.
"그런거라면 매아리 식구들도 엄청 신나거 할꺼 같은데요" 순간 어린 아이의 표정이 스쳐갔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브랜드는 문화를 제공해줄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공익적인 문화캠페인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줬다. "한번은 친구들과 홍대 앞에 주차장을 빌렸습니다. 갖고 있던 물건들을 모아서 조그만 매장을 연거죠. 앞에는 'Long Life Products' 라고 써붙이고요. 공급자들은 물건을 너무 많이 찍어내고, 사람들은 디자인에 너무 쉽게 질려합니다. 이렇게 물건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우리는 물건을 버리거나 창고에 방치하죠. 그러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갈구해요. 이는 심각한 환경공해를 유발합니다. 당시 저희는 문화캠페인을 통해 '사물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문화캠페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인터뷰가 있은 후 그의 지인으로부터 최씨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앞으로 무엇을 세상에 내놓을까. 어떻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까. 내년이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난 느낌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당신은 지금 이 순간 그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취재 송화준, 정세현 편집디자인 따뜻한그림책 기사 및 취재문의 social@nanumnow.com
※본 기사는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읽어보신 후 기사 하단에 댓글 또는 이메일로 피드백을 주시면 적극적으로 수정보완하겠습니다. 꿈을 찾아 방황하는 청년들이 읽고 많은 도움이 될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수정보완 또는 보강자료를 보내주신분들을 원고에 함께 명기해나겠습니다. 공동저자로 참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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