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보통 안도현하면 위에 인용한 시 구절로 유명한 <너에게 묻는다>를 떠올리리라. 그러니 응당 안도현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시인’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작 안도현의 시집을 따로 읽어본 적이 없다. 내게 '안도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그리고 두 번째 책도 이 <잡문>인 걸 보면 안도현 시인에게 무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시인은 머리말에서
"시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산문도 아닌, 그러나 시와 산문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긴장한 흔적들을 모아 감히 <잡문>이라는 문패를 내다건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시인이 시 절필 선언 후 트위터로 누리꾼들과 소통하면서 썼던 글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엮인 책으로는 2013년에 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이 있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파울료 코엘료의 책이 촌철살인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가르침의 느낌이라면, 안도현의 잡문은 조금 더 감성적이고 따뜻하다. 그리고 안도현 시인의 정치적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글도 간혹 눈에 띈다. 이런 글이 실리게 된 배경과 시 절필 선언은 아래 기사를 보면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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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몇 개를 아래에 추려봤다.
4 사랑에 빠진 후배가 오늘밤 연인에게 마지막 문자를 어떻게 보내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차요, 잘 자요.
-초반에 실린 글이면서 가장 좋았던 글이다. 내(화자) 감정에 앞선 상대(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틋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9 바람이 좋다, 라는 생각이 들면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28 내가 보고 싶어서 오늘밤은 가르릉가르릉 비가 내린다. 이건 백석한테 배운 문장이다.
36 웅덩이가 날개를 편다.
-나를 모르게 피식 웃었다.
45 꽃이 없으면 그립고, 꽃이 시들하면 아프고, 꽃에게는 복종하고 싶어진다. 연애와 민주주의가 대체로 그렇다.
-시인의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이 담긴 글이다. 도입부에 설명했었기에 하나 발췌해봤다.(옥의 티는 오탈자 ‘민주주주의’)
55 내다버려야 할 책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책을 다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 책읽기의 완성은 그 책을 버리는 것.
165 햇볕이 차가워지는 11월에는 생의 안쪽을 생각하게 되어 좋다.
-'생의 안쪽’이라는 말을 끌어 안았다. 지금이 11월 이라서 그런가.
205 뽕나무에 오디가 익기 시작한다. 지나는 길에 예의로 몇 개 훔쳐먹었다. 입술과 혀가 시커멓게 오디를 따 먹던 날도 있었지.
-‘예의’라는 말이 이 글을 평범하지 않게 했다. ‘예의’와 ‘훔치다’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너무 잘 어울린다. 예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안도현 시인의 시도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평한다는 것은 조심스럽다. 다만 그냥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SNS시대는 하상욱(서울시), 글배우(걱정하지 마라) 같은 시인(?)들을 탄생시켰다. 그들의 언어적 재치와 지금 이시대를 사는 ‘청년을' '청년의 시선으로’ 으로 바라보는 그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고 이 시대의 거울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시 같지 않으면서도 시 같고, 디지털을 이용했지만 아날로그의 숨결이 살아있는 안도현의 <잡문>이 더 좋다. 손맛을 잘 살린 책의 재질과 편집 디자인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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