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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범죄소설이 좋다. 범죄소설은 사실 우리 마음 속 내부의 잔혹함과 선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본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통속적인 소설이다. 다시 말해 돈 되는 소설이다. 범죄소설의 원조격 작가는 '에드가 앨런 포'이다. 그는 자극적인 범죄들이 등장할 수록 흥행하는 신문의 원리에 기초해 최초의 탐정소설을 썼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범죄소설은 잔혹한 현실에 기초해서 쓰여지는 가상의 이야기이다. 왜 요즈음 흔히 나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소설에서보다 현실이 훨씬 더 잔혹해요."
본인은 범죄소설들 중에서도 범인이 내 앞에서 죄를 고백하듯이, 혹은 그냥 풀어놓듯이 넋두리하는 형식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범인이 주인공인 책에는 일단 관심이 가며, 1인칭 시점의 소설이라면 평판이 어떻든 간에 집어서 읽고 본다. (그래서 내가 그 유명한 롤리타도 읽어보았지.)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도 이 두 가지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해서 더 할 나위 없이 기뻤다. 덕분에 점점 노벨문학상을 도전하는 맛이 난다. 내용도 굉장히 짧고 단순해서 정말 통속 소설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본인은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책을 정말 느리게 읽는 편인데, 이 책은 하루만에 다 읽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괜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토마토주스 터지는 그림 한 컷.
초반에 여러가지 서면과 유언장등이 등장한다.
대충 내용을 정리하자면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감옥으로 감->잠시 인연이 있었던 돈 헤수스 백작에게 소설 원고 발송->돈 헤수스 백작 죽음->파스쿠알 두아르테의 죽음->훗날 1937년 어느 약국에서 한 사람이 원고 발견, 편집해서 책으로 출판.
소설 이전에 스토리가 연결되기 때문에 놓치면 안되는 구절들이니 후기 하나 넘기지 말고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사는 세상은 '술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죽임을 권하는 사회'였다. 그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의 기분과 느낌이 하나하나 전달된다. 처음에 그가 그의 사냥개를 죽이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읽다보니 노란 눈을 하고서 헥헥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개의 이미지가 정말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개의 모습이 마치 '죽여주세요'라고 하는 것 같아서 섬찟했다.
그의 여동생은 집을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몸을 망치고 형편없는 남자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그의 막내동생은 돼지에게 귀를 먹히고 일찌감치 죽는다. 결혼식 날 그의 아내는 임신한 채로 말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말발굽에 채여 유산한다. 그의 두 번째 아이는 무사히 세상에 나오지만, 찬 바람이 아기의 목숨을 데려가버렸다. 집도 따뜻히 하지 못한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해 온갖 미신의 도움을 받는데, 신에게 버림이라도 받았는지 그것마저 역부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비극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이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큰 소리로 웃는다. 그의 여자친구는 그가 동생의 무덤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을 때 그를 '동생같이 모자란 사람같아 보인다.'라고 비난한다. 그가 그녀를 강간하자, 그녀는 그가 '남자답다'고 말한다. 그는 슬픈 일이 있어도 여자들처럼 마음껏 괴로워하지 못한다. 마음껏 울지 못한다. 단지 그가 남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서는 분노해야 하고, 칼로 찔러야 하고, 생물을 생물로서 보지 않아야 한다. 이게 어디 사는 건가?
전에도 말한적이 있지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에겐 마음껏 울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누가 우리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가.
전에도 말했지만 청춘에세이같은 위로로 저런 괴로움이 그칠까보냐?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소심하고 굉장히 감정적이다.
사실 어머니를 죽였을 때부터, 그의 인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굉장히 헷갈리기는 하는데 말년에 자신을 돌봐준 백작을 죽인 것도 같고, 글을 쓰는 시종일관 그는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애를 쓴다. (내 생각엔 아내도 그가 죽였을 것 같다. 그런데 책에선 그 부분이 애매모호하게 나온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는 데 딱히 변명거리를 찾지 못해서 당황하는 티가 역력하게 난다. 결국 그 자신이 죽을 때 그는 침을 뱉고 욕을 해가며 저항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그는 전에 자신이 죽인 자들이 얼마나 죽기 싫었을지 몸으로 직접 겪은 셈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옹호하고 싶다. 그가 감옥에서 갇혀있었을 때, '수도원에 가고 싶다'고 적은 글만큼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고 믿고 싶다. 그의 말대로 파스쿠알 두아르테라는 사람이 따뜻한 집과 정상적인 가정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자라났을까. 그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지만, 늙은 교도소장만큼은 그가 두 번째로 감옥에 가는 날 그를 위해서 울어주었다. 그를 감옥에서 풀어주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이 지옥이었고, 그 지옥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이 널리 퍼지는 것은 파스쿠알 두아르테를 여러 번 죽이는 짓이라 평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죽음'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었다. 왜 하필,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라고 했을까. 파스쿠알 두아르테 개인의 모습만이 아닌, 그를 둘러싼 그의 가족과 그의 환경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뜻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는 많은 동물들과 사람들을 죽인 뒤, 독자인 본인 앞에서 또 한 번 죽었다. 수많은 범죄소설 중에서 한 소설의 범죄자가 죽었다. 그럼으로서 나에겐 교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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