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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네 덕분에 모든 게 한순간에 해결되었어. 가고 싶으니까 가면 되는 건데... 이렇게 간단한 것을 가지고 난 그동안 왜 고민만 하고 있었던 걸까?"
"근데 스페인에 가면 뭘 할건데?" 소정이가 물었다.
"음... 난 춤을 출 거야. 정말 마음껏 춤을 추다 오겠어..."
...
그저 마음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 흐르듯이, 그렇게 나 자신을 놓아주고 싶었다.-10
혹자들은 투우경기가 인간의 '결혼'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 설에 의하면 소는 남자를 의미한다. 지금은 투우경기에 쓰일 소를 따로 사육하지만 원래는 야생에서 살던 소를 잡아다 경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뽐내며 마음껏 여자들을 범하고 원하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살던 야생의 투우는 신랑, 화려한 복장으로 몰레따 속에 에스빠다를 숨기고 투우를 유혹해 결국 무릎을 꿇게 만드는 투우사는 신부, 그 어느 곳으로도 빠져 나갈 수 없이 그들을 가두고 있는 투우장은 결혼, 그리고 숨 막히도록 긴장감이 넘치는 투우경기는 신혼 첫날밤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투우사의 칼을 맞고 무릎을 꿇는 투우처럼 한 여자에게 정복당하고 마는 것이 남자의 운명이라나.-71
역사적으로 늘 소를 신성시 해온 스페인 사람들이 이러한 소와의 한판 승부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 투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이런 의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연과의 정면승부에서 자연을 굴복시켜 인간의 생명력과 힘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일까? 소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극도로 위험하고 두려운 그 상황에 일부러 자신을 내던져 승리함으로써 강렬한 생명의 힘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그래서 투우사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그토록 화려한 복장과 정갈한 몸직으로 소 앞에 서는 것은 아닐까?-77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성당을 올려다 보는 내게 나탈리아가 말했다.
"미나야, 이 성당을 가우디 사후에 다른 건축가가 계속 이어 짓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거 아닌가? 대단한 일인 것 같아, 왜?"
"사실 바로셀로나 사람들 중에는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나도 그렇구.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다른 작곡가가 완성했단 얘기 들어봤어? 이 성당도 가우디가 죽었을 때 거기서 공사를 마무리했어야 더욱 가치가 있었을 거라고 봐. 미완성된 작품은 그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는 건데 왜 그걸 다른 사람이 완성시키려 하는 건지... 그렇잖아, 미완성의 자굼은 그 모습 그대로, 불완전한 사람이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그냥 그대로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거 아닐까?"-119
물줄기도 춤을 추고, 빛도 춤을 추고, 흐르는 음악에 맞춰 내 마음도 춤을 추고, 온 세상이 춤을 추었다.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하 그 모습에 넋을 빼앗긴 글로리아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단에 걸터앉아 함께 분수를 바라보았다. 15분 간의 분수쇼가 끝나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꺼지자 다시 새하얀 물줄기를 뿜어내는 기적의 분수 앞에서 글로리아가 물었다.
"기분 좀 좋아졌어? 정말 예쁘지? 바로셀로나 좋지? 응?"
"응, 좋아. 정말 멋지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 백 번만 데려다준다면 그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 같아. 그만큼 아름답다."-144
스페인에서는 원어로 영화를 상영하는 특수한 극장을 찾아가지 않는 이상 모든 외화는 스페인어로 더빙된 것을 볼 수밖에 없다. TV에서 하는 외화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수입된 영화나 드라마를 스페인어로 더빙해서 보면 그 작품이 주는 본래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스페인 친구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외국 영화가, 특히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의도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문화적인 지배를 받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굳이 힘들게 자막을 읽어가면서까지 그들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우리말로 보고 우리식대로 느끼면 그만이다.'
...
고집불통 스페인 사람들에게 때로는 질린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쉽사리 자존심을 내주지 않는 그들의 그런 상황 덕분에 그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변질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전자음악이나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나이트클럽도 있지만, 웬만한 클럽에서는 매일 밤 세비야나나 살사, 플라멩고와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럴 때면 오히려 더 열광하며 멋들어지게 전통 춤을 출 줄 아는 스페인의 젊은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있지 않나 싶었다.-174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동성애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성'이 같은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기전에 그저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대상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연상이든 연하든,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심지어 기혼이든 미혼이든 간에 그 소중한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간통죄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주 된통 공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다. 아무리 유교사상까지 들먹이며 애를 써서 앞뒤 설명을 해도 그들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무리 그것이 기혼자와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감정을 법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해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곧 책임이기에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관계를 맺어 다른 누군가에에 상처를 주는 사랑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감정이기때문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만일 사랑하는 이가 바람을 피웠다면 그것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 사람의 잘못이므로 슬퍼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을 원망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183
사실 스페인행을 처음 결심했을 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뭐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했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절실했었다. 어쩌다 보니 방송 연수도 하고 석사학위 과정까지 밟게 되었지만 처음에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그저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나왔고 또 용기내어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바쁘게 보낸 시간도 물론 보람 있었지만 이렇게 혼자서 책도 읽고 생각도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야말로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다 보면 후회스러운 일도 많았다. 내가 있던 자리,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생활에 치여 불평하거나 짜증스러워했던 나의 모습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1년을 쉬어 가도 되는 것을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달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안간힘을 썼던 것이 참으로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된 이곳에서의 시간들에 감사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겼고 에너지로 충만해진 내 자신의 모습에 새로 태어난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설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나를 겸손하게 하는 드넓은 바다를 눈앞에 두고 난 그렇게 매일같이 내 안의 잡념과 욕심들을 파도에 실어 보냈다.-266
방송을 접고 스페인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 그렇게 일을 다 두고 떠나면 어떻게 하냐, 돌아왔을 때 그 위치에 다시 서지 못하면 어쩔 거냐, 시집은 안 갈 거냐,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뭐하냐, 축하하고 격려하기보다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잠시 재충전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순조로운 인생을 괜히 뒤엎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확실히 보장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쓸데없이 1년만 낭비하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이루어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 내 안의 열정이 나를 떠미는 곳으로 떠나지 못한다면, 내가 온 가슴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난 오히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안정과 최고만을 찾다가 더 이상의 도전도, 실패도, 변화도 없는 '죽은 삶'을 사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나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누르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마음으로 운명이라는 끈에 나를 맡기고 떠났다.
스페인에서의 1년이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고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손미나'이고 한국인이고 아나운서이고 30대 초반의 싱글이다.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철검 1년간의 여행이 나의 인생을 뒷걸음질치게 하지도 않았다. 그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아니었다. 10년 전 미스터 디엥과의 우연한 만남이 젊은 날의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듯이 스페인에서 1년간 내가 겪었던 일들과 그곳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로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내 앞에 놓여있던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가 택하지 않은 그 길을 갔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알 수 없듯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의지대로 선택한 길을 감으로써 나의 꿈과 나의 인생을 내가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떠나지 않았더라면 언젠가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시기가 왔을 때 분명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엔 늦었다고 느껴졌던 그때야말로, 실패한다 하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는 시기였음이 분명할 테니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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