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서툰 사람들-박광수

Category : 이야기Ⅰ/독서노트 Date : 2012.03.11 21:04 Writer : 송막내

참 서툰 사람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박광수
출판 : 갤리온 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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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밤에 탄산음료와 과자 먹지 않는 것. 
만화가게에서 혼자 낄낄대며 시간 보내지 않는 것.
노는 게 좋아도, 오직 일에만 매진하는 것.
어떤 일에도 계산적으로 나만 생각하는 것.
헛되이 사람 만나지 않는 것.
술자리에서 과음하여 허튼소리 안 하는 것.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이로우면 하는 것.
더이상 사랑 따위는 없다고 믿고 사는 것.
친구들과 어울려 쓸데없는 농담 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것.

이것들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철듦'이라면,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며, 나의 철들지 않음으로 인해 살기 힘들어도 살기 힘들어도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죽는 날까지 그냥
이렇게 썩어 문드러져 가야지.
단 한순간도 철 따위는 들지 말아야지.-30

그 사람이 왜 좋습니까?
이유요?
그런거 없습니다.
싫은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좋은 데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내 심장이 
그사람을 선택했을 뿐입니다.-35


몸은 거짓이 없어요.
눈으로 말하고
손끝으로 사랑을 키우고
두 발로 당신과의 간극을 좁힐게요.
우리 몸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어요.
말은 비밀을 만들고,
헛된 맹세를 만들 뿐이에요.
내 몸이 당신께 말해요.
내 눈이 말하고,
내 솜털들이 말하고,
내 땀구멍들이 말하고, 
내 손이 말하고,
내 가슴이 말해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노라고.-37

당신이 내게 물었죠.
다음 생애는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냐고요.
당신의 물음에 나는 '당신의 안경'이라고 대답했죠.
내 대답에 의아해하는 당신에게
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 의미를 설명해주었죠.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손에 들게되는,
당신과 하루 종일 같은 곳을 다니며 같은 곳을 보는,
그런 안경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자 당신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게 다시 물었죠.
"내가 깔고 앉아서 망가지면 어떻게 해?"
잠시 뒤, 난 고민 끝에 당신에게 말했어요.

그럼 난 바람으로 다시 태어날게요.
그래서 늘 당신 곁을 맴돌며
당신이 슬퍼서 울거나 힘들고 지쳐 땀이 날 때
당신의 귀밑을 통과하며 당신의 눈물과 땀을 닦아 줄게요.

당신이 다시 태어나 슬퍼서 울거나 지쳐 땀이 흐를 때
당신을 통과하는 바람이 불면
내가 바람으로 다시 태어나 당신 곁을 맴돌며
당신을 지켜주고 있노라 믿고 살아도 돼요.-37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녀는 키가 작고
피부도 곱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녀는 현명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멋진 여자가 아니라고.

그래, 그 말이 다 사실이라고 하자.
그래도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어리석은 사람들인 게냐.
내가 그들처럼
그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사랑에 빠졌겠느냔 말이다.

허, 참.-45

정말,

진짜,

너무, 이런 단어들이 
왜 생겨난 줄 아세요?
그건 단지 '사랑한다'는 말로는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말, 진짜, 너무.-48

하루는 친구가 자신의 옛사랑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그녀를 사랑하긴 했는데, 그녀는 나의 사랑을 받기에는 미흡한 사람이었어." 난 그의 말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미흡하다고? 사랑받기에?" 내 물음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다시금 내게 말했다. "아, 미흡하다기보다는, 그녀는 미친년이었어. 나 아닌 누군가에게 사랑받기에도 미친년이었을걸?" 친구의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이빨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나는 친구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사랑했는데 미친년이라기보다는, 미친년을 사랑했노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말이 뭐가 다르냐는 듯한 눈으로 친구는 나를 쳐다봤고, 의아해하는 친구에게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네가 사랑한 그녀가 세속적으로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적어도 네가 그녀를 사랑했다면,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내가 왜 이리 흥분하지는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더이상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운 저녁이었다.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에 대해 쉽게 말한다. "그건 아니었어"라고. 죽고 못 살던 예전의 기억들은 온데간데없고, 태연하게 증오와 조소의 말을 내뱉는 것이다. 분명 둘은 한때일지라도 서로 사랑했을 텐데, 아무리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사랑한 이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사랑은 매우 '핫'한 감정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난 사랑을 '쿨'하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쿨함이 '사랑'이 아니라 '섹스'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랑의 감정은 늘 '핫'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쿨하게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과 함께한 좋은 기억들을 마지막이라는 미명 아래 지저분한 감정으로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이면 함부로 해도 괜찮은가? 더 이상 안 볼 사이니까 아무렇게나 이야기 해도 상관없단 말인가? 그건 상대방은 물론 비록 한때일지라도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 자신마저도 무시하는 것이다. 헤어질 때의 마음가짐, 헤어진 후의 마음가짐이 사랑할 때의 마음가짐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만난 이들과 어떤 식으로 헤어졌든, 세월이라는 뜰채가 미움과 분노와 아쉬움과 섭섭함을 걸러 내어 아주아주 정제된 '그리움'만 내 가슴속에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만난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설령 그중 몇몇은 내게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들을 사랑했었기에 그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내 가슴에 소중히 묻어 두고 싶다.
아주아주 소중히.-49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친구이거나 타인이거나)이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누군가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나와 상관없지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 프로만 봐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게 사람 아니던가.
진짜 힘든 일은, 진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친구가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일이다. 조금 유치하지만, 같이 어렵게 생활하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아주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우와! 차 멋진걸!" 외치면서 축하해 주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반응일 뿐이다. 속으로는 대부분 배 아파한다는 사실을 많은 지인과 친구와 동생을 잃으며 알게 되었고 그것은 슬프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친구가 잘 돼서 기쁘기보다는 친구가 나보다 많이 가졌다는 사실만 주목하게 되는 것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현실인 것이다. 그 다음은 더 뻔해진다. 나쁜 친구는 그림자와 같다. 나쁜 친구는 내가 양지를 걸을 땐 늘 나와 함께 하지만, 내가 음지로 들어서는 순간 언제 곁에 있었나 싶게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정작 슬퍼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진짜로 슬픈 것은 그들을 그렇게 길들인 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어린왕자'에도 나오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길들인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나부터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생기는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기뻐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스스로를 경계하며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고장 난 시계에게도 하루에 두번 배울 점이 있는 것처럼. 나 스스로 '다반향초' 같은 사람을 꿈구며.

친구는 세 부류가 있다고 하다. 첫 번째는 부류는 음식과 같아서 매일 필요하고, 두 번째 부류는 약과 같아서 가끔 필요하고, 세 번째 부류는 병과 같아서 매일 피해 다녀야 한다고 한다.-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