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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Ⅰ/독서노트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2012년 6월 2일, 에반젤리스트 모임 주제도서)

북나눔나우 에반젤리스트 모임은 함께하는 책읽기와 소외지역 아이들을 위한 책나눔이라는 북나눔나우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에 헌신하는 청년들의 모임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3시까지 비전 공유, 독서 방법 연구, 독서토론 등을 진행합니다.

-참가자: 이지용(발제), 용은주, 이수진, 문일주, 이다혜, 송화준(서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최영미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9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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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공감이 많이 갔다. 독서치료로써 또는 허심탄회한 인생을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선정했다.

이수진:대학생 때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같이 동아리 활동하면서 읽었다. 그때는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까했었는데.. 지금 공감한다. 특히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마음이 먹먹했다. 

이다혜:최근에 시를 안읽었다. 조금 어려웠다. 아직 어려서인지 이해가 안가는 것들도 있었다. 냉소적인 시선 등. 기억에 남는시 '혼자라는 건' 실제로 혼자 순대국밥을 먹어봤다, 소주에. 그때 생각이 나면서 좋았다. 90년 대의 서른이란 지금의 마흔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지용:세상에 대한 빛바랜 허탈함 같은게 느껴진다. 또한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같은 따뜻함(?)도 느껴진다. 현실속의 내 마음속을 그대로 인정하는 느낌이다. 이것이야 말로 오히려 진정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읽으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시'가 가장 좋았다. 

용은주:굉장히 기대를 많이 갖고 읽었다. 그렇게 따뜻하다거나 위로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사람 정말 힘든가보다. 그런 정서가 버겁고 어려웠다. 시인이 무슨말을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지용나(이지용)의 얘기를 듣고 알게됐다. 좋았던 시는 앞에서 수진나랑 지용나가 낭송한 시들이 좋았다. 추가하자면 '영수증'

문일주: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이 시의 소재들이 그런거 같다아서 더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굉장히 일상적인 것들인데, 그 안에서 각각의 깊이가 느껴져서 좋았다. '지하철에서 6', '어쩌자고'

이지용:'차와동정(p77)' 지성의 자존심 센 여자(시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남자를 사랑했던 느낌을 적은 것 같다.

이수진: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요즘 힘들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꼭 가라 앉아있는 흙탕물을 휘저은거 같은 느낌이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도 사랑이 진부해졌다(p28). 많이 공감했다.

이다혜:'사랑이 시작하기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는 말이 잘 이해가 안갔다.

이수진:외롭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기는 한데, 왠지 이미 결과를 알 것 같고... 너하고 사랑을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언제가 너랑도 식겠지. 그런 마음이 든다. 

이지용: 양면성이 느껴진다. 사랑은 진부하다. 하지만 또 누군가와 설레이는 사랑을 하고 싶다.(p31 하단 인용)


-모임에서 인용했던 시들-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혼자라는 건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벽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들 끌어안고 버리고 달인 시

비평가 하나 녹이진 못해도

늙은 작부 뜨듯한 눈시울 적셔주는 시

구르고 구르다 어쩌다 당신 발 끝에 채이면

쩔렁! 하고 가끔씩 소리내어 울 수 있는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영수증


하느님 아버지 

여기 제가 왔습니다 

당신이 불러주지 않아도 

이렇게 와 섰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마지막 셈을 마쳤으니 

부디 영수증 하나 끊어주시죠 


제 것이 아닌 시간도 가끔씩 넘보며 훔치며 

짐을 쌌다 풀었다 

한세월 놀다 갑니다 


지상에서 제가 일용한 양식 

일용한 몸, 일용한 이름 

날마다의 고독과 욕망과 죄, 한꺼번에 돌려드리니 

부디 거둬주시죠 


당신이 보여주신 세상이 제 맘에 들지 않아 

한번 바꿔보려 했습니다 


그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아 

당신이 지어내고 엮으신 하루가 밤과 낮 나뉘듯 

취했을 때와 깰 때 

세상은 

이토록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앞으로 보여주실 세상은 또 얼마나 놀라울까요 


하느님 아버지 

여기 제가 왔습니다 

숙제 끝낸 어린애처럼 이렇게 손들고 섰습니다 

부디 영수증 하나 끊어주세요


지하철에서 6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5초마다 세계가 열렸다 닫히는 인생들을

우르르 온몸으로 부딪혀 만난다


어쩌자고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 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어 

졸 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 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차(茶)와 동정(同情)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 


위의 두 문장 사이엔 어떤 논리적 연관도 없습니다 

다만 


2

예언자들의 더운 피로 통통히 살진 밤, 일요일 밤의대행진처럼 

나도 소리내 웃고 싶지만 채널을 돌리면 딩동댕, 지난 여름이 

자막과 함께 우연히 흘러가고 담배연기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서른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만만찮은 얼굴을 하고 

적들도 우리처럼 지쳤는지 계속 쫑알대고, 빨아 헹굴 어떤 

끈적한 현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탁기 열심히 돌아가고 

딩동댕, 시체처럼 피곤해지는 밤이 몰려 온다 


3

빨간 고무장갑만 보면 여자는 무서워 아 악 악을 써도 

소리가 돼 나오지 않는 혼자 있는 빈집, 귀신이닷!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든 귀신이 손만 보이는 투명인간이 쓰으윽 일어나 피 묻은 

손으로 목을 휘감을 것 같아 

숨이 막혀 헉 헉, 못살겠어요 뭐라구? 헤어지자구? 등뒤에서 

하나 둘 창문이 스르르 닫히는, 혁대가 딸각 풀어지는 소리 헉 헉, 

그러나 결코 말로 번역될 수 없었던 말들, 때리지 마 제발 때리지만 

말아요 도둑맞은 첫사랑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냄새 진동하던 그 여름의 

오후, 그것도 세월이라고, 기억을 통과한 상처는 질겨져 있다 

저기 저 방충망 바깥에서 윙윙대는 모기처럼 지금은 더이상 위험할 것도 없는 데...... 다만 나오던 땀이 도로 들어가고 

다만 설거지그릇이 달그닥거리고 


4

요즘은 통 신문 볼 시간이 없어 

살아남은 자들은 예언자의 숱 많던 머리칼을 자르고 자기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책임지려 하고, 바야흐로 총천연색 고해의 계절, 너도 나도 

속죄받고자 줄을 섰는데.... 

그러나, 그러나 아직도 골방에서 홀로 노래를 만드는 이 있어 

바다, 끓어오르고 산, 넘어지고 시퍼렇게 술, 넘쳐흐르고 딩동댕.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분다니까!


5

(조금씩 자주 흔들리는 게 더 안전해) 

일천구백원짜리 마마손 장갑이 내 속을 뒤집어놓고 

아픈 내가 - 내게 아직도 아파할 정열이 남아 있던가 - 다시 

장갑을 뒤집는다 채도가 떨어진 붉은색은 더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 장미빛 인생을 약속할 것 같아, 분홍도 빨강에서 나왔으니, 그러나 

다시는 속지 않으마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부해져 썩는 냄새, 곶감 터지듯 

하늘 벌어지고 떨어진다 떨어진다 

아 - 누가 있어 밑에서 날 받쳐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