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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착한소비 공정무역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본 기사는 휴먼경제와의 파트너쉽에 의해 발행되었습니다. 원문보기

공정무역(Fair Trade)은 세계 무역과 빈곤의 문제를 가난한 생산자들을 위한 공평하고 지속적인 거래를 통해 해결하려는 전 세계적인 운동이다.

제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공정무역이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면서 국내에서도 공정무역에 의한 ‘착한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 대안무역이라고도 불리는 공정무역은 1950∼60년대 유럽에서 태동한 소비자 운동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공정한 가격, 건강한 노동, 친환경 유지, 생산자들의 경제적인 독립 등을 전제로 한 무역을 말한다. 한마디로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환경친화적 제품을 제값에 사는 윤리적 녹색소비자 운동이다.

현재 공정무역을 통해 국내에 들여온 ‘착한 상품’들은 주로 온라인이나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구호단체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국제 공정무역 라벨링기구(FLO)와 세계무역기구(WTO) 통계를 보면 200여 개 단체가 15개국에 대해 진행하고 있는 공정무역은 전 세계 거래 규모의 약 0.01%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위스는 국내 소비 중 바나나 47%, 꽃 28%, 설탕 9%, 영국은 커피 20%, 차(Tea) 5%, 바나나 5.5%가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상품이 차지하는 등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착한 소비’는 세상과 기업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가격이나 품질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생산 과정의 윤리까지 챙기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기업 행태도 바뀌고 있다. 이미 2000년 스타벅스가 윤리적 소비자들의 압박에 못 이겨 에티오피아 등에서 커피 원두를 시장가격보다 2배가량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있으며, 나이키는 2005년 제3세계 국가의 아동들을 착취해 운동화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내의 ‘착한 소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공정무역이 운동으로까지 확산하려면 인지도를 넓히는 일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공정무역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들에선 소비자의 인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제3세계 제품의 품질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거품을 뺀 포장과 디자인에 실망하는 소비자도 있다고 한다.

또한, 사업 단체는 제품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사업의 의미만 강조해서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구매자에게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업 초기에는 착한 소비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품질과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커피, 공정무역의 희망이자 한계

소비자들이 공정무역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품이 있다면 바로 커피다. 세계적으로도 커피는 공정무역의 대표 상품이다. 커피는 제3세계 국가들이 밀집한 열대기후에서 생산되어 대부분 제1세계에서 소비된다. 커피 농가의 악명 높은 노동 강도와 극단적 저소득도 잘 알려졌다. 여러모로 공정무역의 취지에 들어맞는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반 시장의 커피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큰 이점이다. 실제로 아름다운가게나 한국YMCA가 출시하는 유기농 공정무역 원두커피의 가격은 200g에 1만원. 유기농이 아닌 일반 원두커피 가격이 1만5000원대에서 형성된 것에 견주면 파격적이다.

커피의 성공은 공정무역 상품이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훌륭한 사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공정무역 활동가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에서 공정무역 커피의 성공은 ‘커피 가격 거품’이라는 특수한 정황에 힘입은 바 크다. 실제로 아름다운가게가 처음 시도한 공정무역 상품은 커피가 아닌 수공예품이었다. 하지만 큰 적자를 기록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생산자에게 공정가격을 지급하는 데다, 거래량이 적어서 물류비용도 많이 나가는 공정무역이 가격경쟁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생산지의 열악한 인프라도 문제다. 이는 생산지를 찾는 공정무역 활동가들 모두가 직면하는 문제다.

공정무역의 가격 경쟁력은 단순히 상품 하나를 더 팔고 못 팔고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공정무역에 호의적이지 않다.

‘공정무역 상품은 비싼 상품’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버리면, 공정무역은 자칫 ‘먹고살 만한 중산층의 자기만족’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이는 단순한 매출 부진보다 심각한 위협이다. 공정무역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약자와의 연대 및 대안적 관계 맺기’라는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탓이다.

활동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결과도 이것이다. 한국생협연대는 서민들이 원두커피보다 많이 즐기는 인스턴트 커피를 공정무역 커피와 설탕을 사용해 만들기로 했다.

이제 한국 공정무역 활동가들도 단순히 공정무역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소비자들의 선심에 기댈 게 아니라 경쟁력을 인정받고,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며, 그러면서도 중산층 이상만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더 많은 생산자의 삶을 지속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