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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휴먼경제-사회연대은행 공동기획 ①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출발 '경제위기가 새로운 경제주체를 탄생시키다'

 본 기사는 휴먼경제와의 파트너쉽에 의해 발행되었습니다. 원문보기

누구나 인생에서 피치 못할 좌절을 겪을 수 있다. 또한 태어나보니 가난의 악순환 속에 갇힌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주기 위해 체계를 만들고, 기관을 설립하고, 정책을 수립해온 한국의 '마이크로 크레딧'이 있다. 어느덧 한국의 마이크로 크레딧(마이크로 파이낸스)는 10년의 역사를 맞았다. 지금까지 마이크로 크레딧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와 미래의 과제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국의 대표적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인 사회연대은행과 공동기획으로  "희망으로 가는 사다리, 마이크로 크레딧"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_편집자 주

새로운 역사 뒤에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위기가 있었던 것처럼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역사 뒤에는 1997년 IMF사태가 있었다. 실직자가 늘어나고 빈곤과 좌절이 서민들을 덮쳤을 때, 정부의 고용 및 창업지원 대책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동시에 제도금융권이 빈곤계층에 대한 대출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금융소외계층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창업을 시도했지만 내수침체에 따라 신용불량자가 속출하였다. 근로빈곤층을 탈출하고자 자영업자가 되었지만, 기다리는 것은 영세 자영업자의 고달픈 삶이었던 것.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돕는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금융, 마이크로 크레딧의 출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마이크로 크레딧’기관인 ‘신나는 조합’이었다. 1998년 성공회 포천 나눔의 집 김홍일 신부, 이종수(현 사회연대은행 대표),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활지원연구팀장), 김신양(당시 파리10대학 박사과정), 김수현(당시 청와대 빈부격차 차별시정팀장)이 모였다. 이들 5명은 유럽에 있었던 사회연대은행에 주목하고 정부에 이와 같은 형태를 정책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들은 정부보다는 탄력적이고 창의적인 민간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민간의 비영리조직은 공적 조직에 비해 유연했고 외부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와의 결합도 용이했다. 모태가 된 기관은 ‘신나는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다. 우선 ‘신나는조합’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그라민은행의 한국지부로 그라민 트러스트의 기금 5만달러를 지원받아 2000년에 활동을 시작했다.

‘신나는조합’은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경제적 극빈층을 조합원으로 하여 무담보・무보증 방식으로 창업자금을 융자해주고 조합원이 서로 협력하여 지역 내 자활공동체를 만들어나가도록 지원하였다. 또한 ‘대출’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빈민자활・자립 프로그램 운영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사회복지적 서비스도 제공하였다. 현재 ‘미소금융재단’들이 운영하는 ‘미소금융’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 금융복지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신나는조합’의 ‘두레일꾼’은 중간관리자가 되어 조합원 교육과 훈련을 이끌고 개인적 문제에 대한 정서적, 심리적 지원도 진행하고 있다.

▲ 사회연대은행에서 지원하는 기업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사회연대은행’은 2002년 12월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고, 2003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회연대은행’도 자활이 가능하도록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창업에 필요한 자금, 경영, 기술 지원과 사회, 심리적 자활을 위한 교육훈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창업지원사업이 강화되어있다. ‘사회연대은행’의 활동에서는 RM(Relationship Manager)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원 사업체를 방문하여 경영상의 애로사항을 들고, 매출동향 및 사업현황을 파악하고, 영업전략 지도・재교육 실시여부 결정・유통망 개선・상품종류와 디자인 및 매장 변화 조치, 기관연계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다. 즉, 대출과 창업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업이 안착화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이러한 마이크로 크레딧의 활동에는 극빈층, 저소득층을 이른바 워킹푸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근본적 방안이 무엇이냐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산나는조합’와 ‘사회연대은행’의 사업방식은 현재 한국 마이크로 파이낸스 방법론의 양대 축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후 이 두 기관 외에도 아름다운세상기금과 창원지역사회복지은행 등 특정 대상층과 지역을 타겟으로 한 기관이 등장해 다양한 실험을 했지만, 민간 재원만으로 유지되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열악한 기관 운영,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재원은 비영리조직이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휴면예금을 마이크로 파이낸스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시민계의 아이디어였다. 2005년 6월에 ‘휴면예금의 처리에 관한 법률안’이 입안된지 2년만이 2007년 7월에 제정되면서 휴면예금을 활용하게 되었고, 현재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전신인 휴면예금관리재단은 이를 위한 법적기반을 갖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이는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이 겪고 있던 가장 큰 어려움인 재원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만한 사안이었다.

▲ 지원업체들을 위한 세무교육을 하고 있는 사회연대은행ⓒ사회연대은행

실제로 휴면예금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이크로 파이낸스 사업은 본격화되었다. 2009년 “희망키움뱅크”사업으로 13개 지원기관이 선정되었고 기존의 자활지원센터 조직과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지역조직 간의 연계를 높이고자 하는 의지도 높아졌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이후 한국식으로 ‘미소금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09년 9월 17일 정부는 마이크로파이낸스 확대계획을 발표하면서, 10년 동안 2조원의 자금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한다. 금융위원회 산하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재원확보가 용이해지는 만큼 수행기관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짧은 기간 많은 성과를 내었던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초창기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적 마이크로 크레딧의 새로운 역사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신용대출이지만, 제도권 금융기관에 뒤지지 않는 상황실적. 공동체적 지원 및 자활을 목적으로 한 다양하고도 실용적인 사후관리 프로그램 등 한국적 마이크로 크레딧의 성과는 이후 마이크로 파이낸싱의 새로운 단계를 여는 역사적 뒷받침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가난이 개인의 무능력으로 치부되고, 빈곤층은 돈을 갚을 수 없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판치는 사회에 '신뢰와 기회'가 주는 기적을 믿고, '사회적 금융을 통한 협력과 자활'이라는 조용한 '가치변화'를 일으켜낸 것이 바로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연재순서>
1.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출발
2.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현재
3. 마이크로 크레딧과의 10가지 인연1
4. 마이크로 크레딧과의 10가지 인연2
5. 마이크로 크레딧, 대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6. 해외 마이크로 크레딧, 성과와 한계
7. 정부주도 마이크로 크레딧의 명암
8. 이용자 입장에서 본 마이크로 크레딧
9. 정책집행자 입장에서 본 마이크로 크레딧
10. 마이크로 크레딧의 ‘터닝포인트’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