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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칼 폴라니와 Impact Business(2)

 본 기사는 IMPACT SQUARE와의 파트너쉽에 의해 발행되었습니다. 원문보기

자기조정적 시장의 이중적 운동: 자신을 지켜내려는 사회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대 시장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자기조정적 시장은 경제활동에 필요한 투입물과 산출물들의 가격이 자유롭고 탄력적으로 결정되어야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즉, 핵심 투입물인 노동, 토지, 화폐가 상품화되어 각각의 시장을 형성하며, 그 내에서 가격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됨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것이죠.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노동입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들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탄력적 결정’이라는 것은 수요, 즉 경제적 상황에 따라 노동 공급의 양을 줄이고 늘리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바로 해고와 고용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은 분명 자기조정적 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의 대량 정리해고 사태, 최근 몇 년 동안 문제가 되었던 비정규직 직원의 확대와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이겠죠. 물론 토지, 즉 자연에 대해서도 한정되어 있는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통해(시장 상황에 맞추어) 결국 오염되고 고갈되게 만드는 귀결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기조정적 시장은 사회에서 분리되어 튀어나온Disembedded 자유주의적 시장 질서 하에 사회 전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이 핵심이지만, 결국 그것은 사회의 바탕이 되는 인간과 자연의 존재적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기에 동시에 시장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내려는 ‘이중적 운동’Dual Movement의 양상을 보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과 자연(심지어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기업들까지)은 자생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부단한 노력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계속되어 오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 사회 보장제도의 강화, 중앙은행의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 시장거래의 공정성에 대한 감독 및 규제 등의 장치들은 그 좋은 예가 되겠죠. 하지만 이런 보호 장치들은 분명 시장의 기능을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생산요소의 질이 떨어지고 와해된다면 결국 시장자본주의도 그 토대를 잃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기조정적 시장의 계속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이너스가 되는데 플러스도 되는, 그야말로 모순적 시스템인 것이죠. 칼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은 이러한 이유들로 구조적 모순을 가진, 완전해질수록 불완전해지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경제와 사회를 재통합하려는 시도로서의 Impact Business

(Sofia Adam, Social economy and the Greek welfare state: Can Polanyi help us?, EMES, 2009를 참조하였습니다)

칼 폴라니의 이러한 실체론적 혹은 제도주의적 접근법이 Impact Business에 시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좌우파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fad(일시적 현상)인 것일까요, 진화된 자본주의를 시도하는 대안적 방법일까요.

아무래도 그 분석의 출발점은 Impact Business의 정체성에서부터 찾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이는 Social Enterprise를 포함해 Business의 형태를 가지고서 빈곤, 인권, 건강, 복지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Social Impact를 창출하고자 하는 조직들을 아우르는 개념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기존의 영리 기업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Business Model과 시스템 자체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Impact를 창출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고 통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설립한 빈곤층의 자립을 위한 소액대출은행인 Grameen Bank, 인도의 안과의인 Venkataswamy 박사가 설립한 저소득층을 위한 백내장 및 녹내장 무료 치료 병원인 Aravind Eye Hospital 등 의 예를 본다면 더욱 자명해지겠죠. 따라서 Impact Business는 앞서 살펴보았던 사회의 자기 보호 기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 질서로 재편된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비인간적 제도나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마땅히 그 훌륭한 사례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국경의 범위를 넘어 협력 관계의 구축을 통한 글로벌한 접근은 전인류적 가치의 증진을 최우선에 놓는다는 점에서도 발전된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기존의 맑스주의에 기반한 노동조합운동 등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특정 조직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을 살펴볼 때, 사회 전반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차별화되는 요소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는 Impact Business의 의의는, 바로 자기조정적 시장의 등장으로 분리되었던 경제와 사회를 재통합하려는 시도라는 데 있습니다. 자기조정적 시장이 상정하는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로빈슨크루소적 모습입니다. 그러나 Impact Business는 시스템 내의 모든 주체들이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는 활동과 노력들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Impact Business가 처음 실행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장 체제로 인해 모두가 잊었던 본연의 인간 모습 중 하나를 다시 되찾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네요. 인간 사회가 태초부터 합리적 개인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금까지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욱 높았을테니까요.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의 특별한 요소라고 일컫는 시장과 그 부산물 격인 Business를 활용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즉, 칼 폴라니의 주장처럼 교환, 시장 제도는 자본주의 체제만의 특징이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여러 활동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tool로서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수많은 폐해를 낳아 온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다른 것도 아니라 그들의 핵심 요소로 정면 반박하는,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나아가Business가 가져다 주는 지속가능성의 담보를 바탕으로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창출을 통해 통합된 사회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Business 섹터에 있어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그 핵심 가치로 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조류임에 틀림없습니다. 사회적 관계와 맥락, 제반 문제의 해결과 가치 창출 속에서 Business를 활용하는 Impact Business는 어중간한 회색의 모습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와 재통합을 시도함으로써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효과적인 이니셔티브인 것입니다.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Impact Business 분야에 뜻을 가지게 된 사상적 계기였던지라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나 물론 Impact Business만이 새 사회의 지평을 여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봉사, 기부, NGO 등 시민섹터의 활동, NPO의 활동 모두 그 방법들입니다. 하지만 좌우 진영을 구분하는 소모적 논쟁보다는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실증주의적, 실체적 접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칼 폴라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인용 및 참고 문헌>

  •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거대한 변환, 민음사, 1991
  •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사람의 살림살이 II, 풀빛, 1998
  • 칼 폴라니(홍기빈 옮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 2002
  • 칼 폴라니(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출판사, 2009
  • Sofia Adam, Social economy and the Greek welfare state: Can Polanyi help us?, EMES, 2009
2011/10/01 - [기타] - 칼 폴라니와 Impact Busines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