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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칼 폴라니와 Impact Business(1)

 본 기사는 IMPACT SQUARE와의 파트너쉽에 의해 발행되었습니다. 원문보기

좌우 구분이 쉽지 않은 Impact Business?

최근 사회적 기업과 소셜 벤처 등의 열풍과 더불어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마크 주커버그로 이어지는 세계적 부호들의 기부가 이어지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의 경제적 이익도 창출하는 Impact Business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저희 블로그를 열심히 구독하시는 분들께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성공의 실효성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으레 등장하는 것이 바로 좌우 사상 논쟁입니다. 이유인즉슨, Impact Business는 ‘Impact’라는 단어에서 좌파적 요소를, ‘Business’에서는 우파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두 진영의 중간 위치에 포지셔닝하고 있기에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존재 목적과 배치된다는 논의로 우파에서 공격을 받고, 기업이라는 조직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점에서 기존 자본주의의 아류라고 좌파에서도 공격을 받는, 경계선 상의 어중간한 이상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낡은 이분법의 틀을 벗어 던져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 합니다. 도움을 주실 분이 바로 제목에 등장했던 칼 폴라니(Karl Polanyi)입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했던 이 생소한 아저씨가 21세기의 트렌드를 분석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어, 우선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경제인류학의 거두, 칼 폴라니

칼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로서, 서구의 시장자본주의 체제 분석을 주 연구과제로 삼았던 지식인입니다. 구체적으로 그의 연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우선 분석의 대상이 되는 역사적 시기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과 고대 메소포타미아 등과 같이 매우 오래 전 이야기들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시장자본주의의 요소들이 발현되기 이전이라고들 말하는 시기죠. 하지만 칼 폴라니는 유명한 트로브리안드 지역의 쿨라 교역,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제국의 산물 분배 등의 실증적 분석을 통해 고대 경제에도 교환 행위, 즉 시장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고대 교역 행위의 세 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호혜성Reciprocity: 정치적,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 혹은 개인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식의 교환 행위를 뜻합니다. 칼 폴라니의 트로브리안드 지역의 쿨라 교역 분석을 보면, 여러 섬들 간에 붉은 조개 목걸이와 흰 조개 팔찌의 주고 받음이 일어나지만 다시 돌려받을 것을 의식한다거나 언제 돌려받을지를 기술하는 등의 경제적 성격을 최대한 숨기면서 암묵적 약속과 같이 그 순환이 일어나게 짜여 있었다고 합니다. 즉, 각 사회 내 서로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개인들 사이에 선물 교환을 통해 섬들 간의 일종의 평화조약으로서 기능했다는 내용입니다. 토기, 돌도끼날 등의 경제적 물물 교환은 순전히 그 부속 제도로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 재분배Redistribution: 한 국가 내에서 왕이나 지배 계층이 각 지역에서 생산한 산물을 거두어 들인 다음에 다시 각 지역으로 하사하는 형태의 교환을 말합니다. 현대에서 정부가 세금을 거두어들여 복지 등의 형태로 다시 나눠주는 것과 거의 유사한 방식이죠. 이 경우에도 중앙은 지역에 대해서 정치적 우위가 있었기에 그러한 교환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즉, 경제적인 목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 교환exchange: 우리 모두가 익숙한 부분이죠. 하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전국적 규모의 시장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아주 부분적인 지역 내에서 간헐적으로 시장이 열렸다고 합니다. 풍년이 들거나 부족한 물품이 있을 경우 그 때 그 때 시장을 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7일장과 비슷한 주기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죠. 게다가 위 두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던 형태였다고 합니다.

시장에 대한 신화를 무너뜨리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요약하자면, 근대 합리적 개인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던 교환 행위가, 그리고 시장이 고대에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교환하면 으레 가격이 생각나듯 부분적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이죠(이 때 단일 화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물품간의 비교적 일정한 교환 비율이 존재했을 경우 가격 설정 기능이 존재했다고 봅니다). 단, 그 경제적 행위는 사람들간의 사회적 관계나 위치, 정치적 맥락 등과 같은 사회적 조건에 ‘묻어 들어가 있었다’Embedded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력이 강한 두 부족 간에 생산물을 교환하는 행위가 일어났기는 했지만, 경제적 이익에서만 비롯되거나 그 교환비율을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부족 간의 우호적 관계 유지, 친분 쌓기 같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억제 때문에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은 부분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칼 폴라니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온, 교환행위를 바탕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이라는 제도가 시장자본주의 체제에서만 특별하게 나타나는 전제조건이라는 명제를 무너트려버립니다. 아주 옛날부터 교환을 모태로 하는 시장 제도는 존재했으니까요.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경제 체제가 근대의 자본주의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합니다. 이를 통해 근대 시장 자본주의 경제를 존재할 수 있게 한 바탕이 되는 네 가지 제도를 제시했습니다.

  • 세력균형체계
  • 국제 금본위제
  • 자유주의국가
  • 자기조정적 시장

그는 이 중 마지막 자기조정적 시장이 이 체제의 원천과 기반이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한지 한 번 알아보죠.

16세기 들어 강력한 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던 절대 군주들은 지방의 독자적 세력들을 퇴출시키는 노력들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 도시가 무너지고 지역 시장이 철폐되는, 즉 사회적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적 부산물로 이전에는 없었던 이례적인 전국 규모의 시장이 나타났다고 분석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장’이라고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형태이죠. 이후에도 19세기 중반 영국 정부가 시행했던 자유무역, 금본위제, 구빈법 철폐 등의 조치를 통해 시장자본주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칼 폴라니가 ‘자기조정적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라고 명명한 이 체제는 생산요소로서 투입되는 모든 산물들의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했습니다. 즉,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 ‘묻혀 있어’ 드러나지 않았던 경제적 조건이 돌출되어 ‘튀어나오는’Disembedded 작업이 필요했고 국민 국가 건설을 위한 작업들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시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과 똑같아집니다. 노동, 토지 사용, 자본 투입에 대한 대가를 금전적 가치로 산정해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생산물의 가치를 매길 수 있고, 수요와 공급의 힘을 계산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시장에서 재화의 거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계속)

<인용 및 참고 문헌>

  •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거대한 변환, 민음사, 1991
  • 칼 폴라니(박현수 옮김), 사람의 살림살이 II, 풀빛, 1998
  • 칼 폴라니(홍기빈 옮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 2002
  • 칼 폴라니(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출판사, 2009
2011/10/01 - [기타] - 칼 폴라니와 Impact Busines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