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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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임레 케르테스 (다른우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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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 p. 292


  아 정말... 김사과님께는 미안하지만 <미나>보다가 이 책 보다가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거의 편집증적으로 완성된 닫힌 결말을 꿈꾸던 나에겐 너무나 환상적인 소설이었다. 잠잠하게 진행되다가 서서히 증가되는 갈등의식, 클라이맥스에서 소설을 쓴 이유를 주인공의 입을 빌려 명백히 밝히는 정신, 더 이상 뭐라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이 명백하고 깔끔한 결말. 분명 책모임을 가면 전에 읽었던 <숨그네>와 비교하지 않을까 싶다. <운명>도 <숨그네>처럼 강제 수용소에 들어간 '특별한' 인종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에 봤던 그 책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라서 비교할 차원도 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난 두 책들이 다 마음에 들었다. <숨그네>는 어린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매우 모호하고 몽롱한 악몽처럼 써내려갔다. 이 책을 보던 독자는 피부를 달려 내려가는 축축하고 음습한 기시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운명>은 강제 수용소의 이야기들을 매우 현실적으로 써 내려갔기 때문에 독자가 주인공처럼 엉겹결에 강제 수용소에 잡혀간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마치 <원미동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사람 사는 분위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감있는 강제 수용소 이야기라니. 믿을 수 있겠는가? 일단 이 책을 펼쳐놓고 보면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독서에 엄청난 집중력을 써서 그런지,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허망하고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본인이 <운명>에 별 다섯개를 붙이는 이유는 적절한 교훈의 등장 때문이다. 뭐 소설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교훈을 상당히 중시하는 사람이 있지만, 난 그런 타입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교훈에서 풍겨나오는 유대감과 공감력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우리나라도 유럽 국가들 만만치 않게 역사적 상처를 많이 겪으며 자라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단 파란 기와지붕 아래 앉아있는 어느 대통령씨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트러블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돌아오지 않는 외규장각도서, 광주에서의 혁명을 북한 탓으로 태연히 돌리는 보수층들... 우리는 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처투성이의 혼령은 이렇게 부르짓는다. "나를 잊지 말아다오." 


"적절한 교훈의 등장에서 풍겨나오는 엄청난 유대감과 공감력"

 P.S 본인은 특히 유태인을 마음껏 까는(사실 비난하기 보다는 어떤 기이하고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한 눈초리였지만.) 이야기가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에서 쓰인대로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잘난 척 기도하고 있었다면... 아 뭔가 생각만해도 역겹다.


임레 케르케스

예전에 부다페스트 기자이셨던 이력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한 기자는 그 자신이 아니었을런지.



리뷰어 : 김정원(미나비리스)
소개 : 네이버 블로그 '마호가니 서재에서 헤드폰을 끼다(바로가기)'운영
책취향 : 우울, 반전, 잔인함, 선정성, 사회에 대한 분노표출, 영미고전소설, 동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