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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또예프스끼

  이제까지의 도스또예프스키(이하 또예)와는 다른 얇은 두께.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그만의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이 소설(이하 [수기])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같은 자전적 소설의 경향이 꽤 묻어난다. 작가의 후기 걸작에서 볼 수 있는, 개성있고 생생한 인물 창조력이나, 하나의 주제를 폭넓게 펼쳐나가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는 그닥 드러나지 않지만, 세속적인 인간군상을 경멸했던 책벌레이면서, 신경질적이었던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장이 꽤나 많다.

  대체로 분위기가 침울하고 어둡고 자학적인데, 작가 특유의 기질과 더불어 이 작품을 쓸 당시 무척이나 어려웠던 작가의 환경이, 그런 경향을 더욱 부추긴 듯 하다.

  이 책은 당시 러시아에 유행처럼 번지던 윤리적 합리주의와 공리주의, 사회주의, 서구사상에 대한 맹목을, 인간의 부조리함(불합리성)을 토대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나 사상이나 이상이라 할지라도 과연 인간이란 존재를 틀안에 가둘 수 있는가.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해서 과연 인간이란 자신의 욕구를 거세한채 그런 이성과 합리만을 따르는 존재인가. 인간이 역사상 한번이라도 그랬던 적이 있었는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은 무척이나 타당하게 생각 되면서도, 한편 인간의 해답없는 절망적 상황을 일깨워 독자를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또예는 자신의 후기 걸작들에서 신의 구원을 인간이 지닌 부조리함의 유일한 탈출구로 제시한다. 그러나 [수기]에서는 아무런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작가가 그런 결론을 내릴 만큼 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저 인간의 답답한 현실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어려웠던 작가의 환경이 그를 절망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어둡고 우울한 소설은 각종 사상과 주의에 심취했다 비판으로 돌아서고, 신(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을 통한 구원으로 향하는 작가의 발전과정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다.([수기] 이후 니힐리즘과 인신사상도 작가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듯 하다.)

  분명 [수기]는 또예형이 남긴 불후의 명작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아직 완숙하지 못했어도 여전히 그는 거장이었다. 그가 제기하는 문제는 언제나 보편적이고, 그의 통찰은 남다르다.  플러스, 그의 성장과정과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니...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만족감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하로부터의수기
카테고리 소설 > 러시아소설
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 (열린책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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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 주나나(이지용)
소   개 : CCM&찬송 커뮤커뮤니티 '주 나눔나우' 지기
책취향 : 인문고전,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