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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악령], 도스또예프스끼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던 또예형 읽기.

  [악령]은 원체 산만한 또예형의 글쓰는 방식을 고려하더라도 지저분하기 그지없는데다가, 뜬금없고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 전개가 많았다. 그러나 읽다보니, 사실 그런 산만함과 뜸금없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삶의 모습에 참 많이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도한 귀부인, 사상을 완성하려는 학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허무주의자, 급진주의자, 자유주의자, 알콜중독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피조물의 나약함과 양심과 도덕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를 초월하려는 니힐리스트 등등..각자자신을 멋지게 포장하려 노력하지만, 심리학이 미처 성숙하기도 전에 이미 대심리학자로서 인간의 심연을 꿰뚫어 보던 도스또예프스키의 펜앞에서는 그저 가엾은 모습으로 처량하게 발가벗겨진다.
 
  "신념과 인간, 이건 많은 경우에 전혀 별개인 것 같아. 난 어쩌면 그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는지도 몰라...! 모두가 죄를 지었어,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그리고 모두들 이 사실을 확신하기만 한다면야...!"

  책의 절정을 넘어 결말로 넘어갈 즈음, 혁명적 무정부주의에 가담하던 한 등장 인물은 한 여인을 향한 사랑 앞에 자신이 그토록 쌓아올리던 관념과 지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저렇게 읊조린다. 그렇다. 모두가 어떻게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 발버둥치지만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들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신에게 수많은 죄를 짓고 사는 허물 많은 존재들인 것이다.

  악령을 통해 도스또예프스키는 우리의 삶이 그저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희극이자 비극이며 부조리극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러나 마지막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연설, 그리고 수도승 찌혼과 쓰따브로긴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라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음 또한 다시 한번 일깨운다.
 
  서론에도 썼듯이, 참으로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은 지금.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다. 그만큼 도스또예프스키 특유의 집요하면서도 얄미운 인간심리묘사, 개성있는 인물 창조력, 전체적 전개는 엉망임에도 각각의 사건을 풀어갈때의 응집력등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소장을 목적으로 책을 구입하길 잘했다. 언젠가는 꼭 다시 손에 잡게 될 날이 올테니.

악령(상)
카테고리 소설 > 러시아소설
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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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 : 주나나(이지용)
소   개 : CCM&찬송 커뮤커뮤니티 '주 나눔나우' 지기
책취향 : 인문고전,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