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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노희승]'좀비의 나라에 맞서는 길, 독서'[불량 사회와 그 적들(도정일 외, 2011)]

*400자 원고지 6장
[불량 사회와 그 적들]은 프레시안에 실렸던 인터뷰 또는 좌담들을 모은 책이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면과 문제점을 짚어본다는 점, 인터뷰 형태의 글이라 쉽게 읽히는 점이 미덕이지만 대체로 책 출간 당시의 저자 인터뷰여서 책 전체를 꿰뚫는 문제의식은 또렷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또한 내가 책이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익숙한 내용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어 상대적으로 신선함이 떨어졌다. 반대로 내가 접한 적이 없거나 평소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 했던 저자인 경우, 그들의 생각이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책의 목차에서 저자들의 이름을 보고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두식 님의 인터뷰를 실은 장에서는 기독교인이자 법학자인 그의 정체성에 대한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분의 종교 쪽 저작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인터뷰를 보고 나니 그쪽도 들여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표심"을 다룬 정태인, 최태욱, 박성민 님의 좌담도 흥미로웠고 박근혜 현상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고성국, 이상이, 이철희 님의 장은 열띤 토론의 장 가운데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무척 인상 깊었던 장은 엄기호 님과 대학생 윤희정 님이 20대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었는데, 나부터도 20대에 큰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그들을 답답해 하기만 했을 뿐 정작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 이 말은 곧 그들과 소통하려 한 적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이런저런 모임에서 (정말 오랜만에!) 20대 청년들과 만날 기회가 있는데 그이들과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과 엄기호 님의 책 [이것이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 길게 정리해두고 싶은 장은 도정일 님의 일갈(!)이 담겨 있는 "한국을 '좀비의 나라'로 만드는 바이러스에 맞서라"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사유의 정지'를 말한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각'은 '사회적 사고', 즉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뜻한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되는 한국 사회의 네 가지 바이러스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다. 밀림주의 바이러스, 시장만능주의 바이러스, 쾌락만능주의 바이러스, 착각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착각 바이러스는 지식 만능주의와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필요한 정보와 지식? 인터넷에 다 있어. 그때그때 검색하면 돼"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게 되면서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도정일 님의 진단은 간단하다. "답은 거기에 없다". 답은 누군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사고력뿐만 아니라 상상력, 모험심, 이해력, 새로운 시각도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이 부분은 최근에 읽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맥상통한다. 웹에서 보는 하이퍼텍스트 문서, 검색어를 다 입력하기도 전에 검색어가 제시되고 결과가 나오는 구글 검색, 온갖 미디어들이 혼합되어 시선을 끄는 웹페이지와 역으로 그것을 모방하는 TV, 신문, 잡지 등의 전통 미디어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면서 집중력과 깊게 사고하는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 저자인 니콜라스 카의 문제의식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는 10대들을 새로운 인류의 출현이라고 반기는 돈 탭스코트 같은 사람도 있기에 이론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지만 온라인 미디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 되짚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이 장에서도 20대 문제가 언급되는데 도정일 님은 20대의 안이성, 의존성, 속도주의, 편의성에 대한 탐닉, 집중력 결핍, 시장에 순응하는 태도 등의 문제가 성찰 부족에서 온다고 본다(이러한 문제를 무슨 자연재해처럼 현상만 진단하고 넘어갈뿐 책임은 지지 않는 기성 세대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생각에 성찰하는 습관은 독서에서 온다. 20대든 기성세대든 책을 가까이 해야 하기 위해서는 일상화, 생활화, 습관화가 필요하며 책 읽기를 통해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독서는 그 자체로 정신적, 심리적인 사회 안전망이 되며, 독서 모임은 소통의 공간이자 마음의 공동체라는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책을 좋아하고 책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어렸을 때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는 나로서는 도정일 님의 지적과 결론이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으면 "책에 길이 있다"는 주장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기에 어떻게 하면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책을 들게 할 수 있을지 고민도 된다. 이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품고 가며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 또 궁리하는 수밖에.

리뷰어 노희승 책읽는 사람들의 놀이터 볼록'bollok'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