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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그들은 진실하다. 그들은 논점에 대해서 예리하게 알고 있으며, 끊임없이 짤깍거리는 작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거리에 줄지어 선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손가락을 꺾는 소리가 바로 그들 자신의 모습인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 심지어 그들이 그 곳에 없더라도, 전 도시가 중심가에 담을 쌓고 생 하버의 넓은 잔디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더라도, 그들이 짤깍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p. 275~276
재즈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음악소설로 했으면 좋을 뻔했다'라고 절실히 느꼈다. 시작할 때는 약간 알앤비 스타일이 섞인 경쾌한 음악, 남녀가 클럽에 들어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끈적끈적한 블루스, 주인공들이 저마다 씁쓸하게 과거를 회상할 땐 색소폰이 무겁고 길게 늘어져 바닥에 엎어지는 음악. 본인은 재즈에 심취해서 듣는 편은 아니라 특정한 종류를 제시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내 귓속에서 저절로 들린 음악소리를 이렇게나마 허접한 미사여구로 묘사해볼 뿐이다.
지극히 자유롭고 미국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무튼 가독성 하나만큼은 굉장하다. 클라리넷처럼 첫부분부터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스토리는 꽤 탄탄하고 좋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어떤 사건이다. 조와 바이올렛은 미국 도시에 상경한 흑인 부부이다. 그들은 화장품을 판매하거나 남의 집에 찾아가 머리를 꾸며주며 먹고 살아간다. 그리고 조는 50여살의 나이로 17살의 한 흑인 여자아이를 사랑하게 된다. 소위 바람을 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분방한 소녀의 마음을 오래 잡아두지 못하고, 결국 실의에 빠져 (사건이 분명치 않은 것 같지만) 그녀를 죽여버린다.
그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이 상처받는다. 일단 바이올렛은 충격에 빠져 장례식에 찾아가 그녀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하려했다. 그러나 기분이 진정되자, 갑자기 그 소녀가 연적에서 자신이 뱃 속에서 낙태시킨 아이로, 자신이 잃어버린 젊은 소녀 시절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일상생활을 버텨낼 정도로 치유될 때까지 그 소녀의 사진을 난롯가에 올려놓는가 하면, 소녀의 숙모를 찾아간다. 또한 소녀의 절친한 친구를 집으로 불러내 같이 음악을 듣기도 한다. 결국 그 친구가 그들을 어중간한 죄책감에서 구원해주는 열쇠가 된다. 소설은 일인칭 구도를 취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중심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화자가 다르다. 즉, 화자가 계속 바뀐다.
글쎄... 일단 구도는 좋다. 그런데 한 가지 버려도 되었을 것 같은 스토리는 바이올렛의 할머니가 그녀에게 자주 이야기했다던 금발의 혼혈 소년이야기. 일단 정체성도 없고 갈 곳도 없는 혼혈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결말이 너무 애매모호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다른 인간을 죽인 이야기인데, 너무 희망적으로 끝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시체를 손상시키려 한 바이올렛도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다. (지 남편이니 지가 책임지고 딸 나이의 여자애와 성관계를 맺은 남편을 족쳐야지. 나같으면 불결해서 못살겠다. 실제로 소녀의 숙모는 그 꼴 안 보려고 떠난 듯 하지만.) 어떻게든 죗갚을 치러야 서로가 마음이 편할 듯한데, 굳이 끝을 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너무나 평온하다. 하긴 벌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벌 받지 않는 게 현재의 세상이라지만...
결론은 그들이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악착같은 인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무작정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도시,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시에 빨려들어가서는, 왠만해서는 시골로 다시 돌아올 생각을 전혀 안 한다. 익명의 사람들하고 잔뜩 부대끼는 생활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언가 굉장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혹은 적막한 생활이 좋다고 하더라도 일단 도시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혹은 시골이랄 곳이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그래서 이 소설은 지금도 굉장히 슬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네 가슴아픈 생활 이야기이다.
<빌리버드> 등 주옥같은 소설을 쓰신 토니 모리슨.
백발 레게머리를 흩날리시는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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