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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양손잡이] 땅 위를 걷는 도시 - 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부 (필립 리브)

모털 엔진 - 10점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네, 오랜만에 읽는 SF입니다.

  SF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지요. 딱히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만 며칠 전 읽었던 <1984>처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책이 있는 반면 각종 과학 얘기가 잔뜩 들어간 하드 SF가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견인 도시 연대기 1부 <모털 엔진>은 여태껏 읽은 여타 SF와 많이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로는 난생 처음 접해보는 장르이기도 하지요. 스팀펑크입니다. 단 일전의 스팀펑크 장르는 18, 19세기를 그리는 반면 <모털 엔진>은 명백히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과학이 한참 발전한 시대에 '60분 전쟁'의 여파로 지구는 살기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견인도시'를 만들어 생활하게 됩니다. 물론 견인도시에 반대하는 반 견인동맹도 존재하고요.

  견인도시들은 서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보다 작은 도시를 먹으면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거죠. 그곳에서 날 적부터 살던 사람들은 사냥이 있을 때마다 환호합니다. 그런 런던 시가 솔트후크라는 작은 도시를 먹습니다. 런던 시의 역사학자 길드장인 밸런타인은 솔트후크의 해체작업에 참가합니다. 고물 수집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 그를 맞이한 것은, 한 소녀가 들이미는 칼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주 휘몰아치죠. 별 설명 없이 우선 칼부터 들이밀고 보는 겁니다. 주인공인 톰과 칼의 주인공 헤스터는 결국 런던에서 떨어지고 런던을 향한 그들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노예로 팔려갈뻔 했다가 공중도시로 가지 않나 해적타운을 만나기도 합니다. 작가 필립 리브가 꽤나 대단한 이야기꾼이란 걸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긴 여정은 아니지만 거기서 이야기를 길쭈우우욱하게 뽑아낸다는 거죠.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어느 봄날, 런던 시는 바닷물이 말라 버린 옛 북해를 가로질러 작은 광산 타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11쪽)


  책의 첫 페이지를 펴면 보이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모든 세계관을 말해주고 이것만큼 1권에서 눈에 띄는 문장은 없습니다. 북해가 말랐다고? 런던 시가 광산 타운을 추격한다고? 세계관을 담고 있으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키는 역할. 첫 문단, 첫 문장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청소년입니다.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성장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른들은 다른 도시의 사냥을 보며 열광하고 반 견인동맹의 도시를 파괴한다고 축제를 열지만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죠. 아직 타성에 젖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나는 나, 너는 너지만 그렇다고 너는 단지 타인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결국 그 너도 너에겐 나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런 게 바로 동심, 아니겠습니까.

  저는 웬만큼 재밌는 소설이라도 사흘 정도 잡고 있는데 이 놈을 읽는데는 하루 하고 반나절 정도 걸렸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흥미롭고 진행도 꽤나 빠르기 때문이지요. 문장도 약간 가벼운 편이고 복잡하지 않아 머릿속에 팍팍 들어왔거든요. 주인공이 어려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일뿐입니다. 문장이 너무나 가볍고 유치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의 저자가 이청준, 박완서, 박민규인데다가 직전에 시집 두 권을 읽었습니다. 가벼움을 느낀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세계관이 방대하고 스토리가 좋아도 문장이 유치하면 저처럼 단면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거든요. 작가의 문체가 문제인지 번역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으신 고귀하신 어른들은 SF는 역시 청소년 문학이다, 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 문학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해리포터도 처음엔 동화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멋진 다크 판타지로 끝났지요. (사견입니다만 해리포터 시리즈는 책으론 별로고 영화로는 썩 괜찮았습니다.) 견인도시 연대기도 앞으로 4부까지의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주인공들은 얼마나 성장할지, 이야기는 얼마나 어두워질지, 주제는 얼마나 무거워질지 기대해봅니다. 전 뼛속까지 어두운 사람이니까요. 우후훗.

  (2011년 9월 26일 ~ 9월 28일, 4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