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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Ⅱ/기타

[미나비리스] '광기의 뿌리를 찾아서' [우리들이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오에 겐자부로]



우리들의광기를참고견딜길을가르쳐달라(오에겐자부로소설문학전집8)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오에 겐자부로 (고려원,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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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죽은) 페니 뒤에 남겨진 우리도 이 핵전략 체제하에서 언제까지 호흡하고 배불리 먹고 성교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당황해한다면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당황해해야 하지 않겠니?"- p. 35

 오에 겐자부로 전집 중 한 권으로 출판되었다.
고려원에서 출판되었으며, 대강 B5면적의 하드커버이다.
책이 그렇게 두꺼운 편은 아니라서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용에 너무 심취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또 인터파크에 올라온 책이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냥 다시 번역되어 출판되는 일 없이 그냥 절판되어 버린건가... 매우 아깝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거의 일본 문법을 그대로 따온 것에 지나지 않아서, 문장을 우리나라 문법으로 해석하기 위해선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아무래도 번역가가 오에 겐자부로의 문체를 살리려고 과하게 노력한 듯하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오에 겐자부로고, 번역가는 번역가이고, 독자는 어쨌던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아닌가. 좀 더 유연하게 번역할 수는 없었을까? 무튼 소설의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사실 전에 그의 단편소설 <이 땅에 버려진 아이들>을 보고 무지하게 실망했었는데, 지금 그의 장편소설을 보니 왜 그런 내용을 썼는지 얼추 이해가 간다. 그의 소설 전체에 무엇이 써 있을지도 얼추 짐작이 간다. 처음엔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몰라서 혼돈이 올 수 있지만, 그의 소설을 침착하게 읽어나가다 보면 그가 전달하려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가급적이면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으려면 장편을 읽으시기를.

 네이버책에서는 이 책에 대한 점수가 낮다. 전부터 책에 대해선 점수를 그닥 따지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더더욱 사람들의 평가를 따지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왜 사람들이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낮게 보는지 생각해보았다. 첫째로, 이 책의 분위기가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아서일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광기에 찬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고의던 우연이던 침해하면서 전개되는 스토리를 띄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광기에 찬 사람들을 보면서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자신을 싫어하기도 한다. 무지막지한 열등감과 질투심이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단편들이 합쳐져있는 소설이다. 각각이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소설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얽혀있다. 예를 들어, 시코쿠 숲이 계속 반복하여 등장한다. 도망치듯이 한 소설에서 다른 소설로 도망쳐도, 독자는 그 광기가 시작된 음침하고 어둡고 매혹적인 시코쿠 숲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가볍고 즐거운 내용의 책만 보려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부담가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내부에 뿌리깊은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끄집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두번째,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감정이 소설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는 말할 수 있기는 커녕 말이 통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아들을 두고 있었다. 겐자부로는 차마 아들에게 다 풀어놓을 수 없는 그의 모든 절망과 분노와 사랑을 소설에 다 퍼부은 것이다. 나름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을 자제했다고는 하지만,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 감정의 폭포수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자폐성 아들을 두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까. 세번째, 철저히 고전문학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현실주의적인 내용을 기대하면서 읽은 사람들은 분명히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오에 겐자부로가 핵발전에 반대하고 사회적 운동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소설에 '막'을 드리움으로서 '가시'를 보일락말락하게 가려버렸다. 소설을 소설답게 쓰려는 그의 의도라고 짐작된다. 본인은 그의 그런 집필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현실문학이랍시고 문학다움을 무차별하게 깨뜨려버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가. 물론 사회상의 부패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문학은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순박해보이는 할아버지인데,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발상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는지...

 

 광기, 유백색의 끈적끈적한 막에 드리워져있는 무언가 가시가 있는 구체, 하얀색 도화지에 찍힌 안개색 얼룩... 본인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키워드가 이 소설 하나에 전부 다 빠짐없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중반부에는 신기해서 본인이 생각했던 문구들을 구분하려 줄쳐놓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색깔이 그만큼 강렬해서이거나, 아니면 나와 저자 사이에 무언가 통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 분의 소설들은 나중에 전집이 있는 도서관을 찾아내서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적어도 내 취향엔 매우 잘 맞았다. 

 P.S 근데 일본인들은 무슨 미국에 대한 단체 피해의식이라도 있나 아니면 단체매혹에 걸려 있는 건가...

 일본 남자가 미국 여자한테 호구 취급당하는 장면은 무라카미 류랑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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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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